내가 번역을 그만 둔 이유

Last Updated: 2024년 04월 09일 | | 2개 댓글

10년 이상 번역회사에서 근무하며 검수와 번역 업무를 담당했던 저는, 2010년경 프리랜서 번역가로 전향했습니다. 약 20년 간 번역가 생활을 했지만, 몇 년 전 번역을 사실상 그만 두었습니다.

번역계를 떠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어려운 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번역을 그만 둔 이유

내가 번역을 그만 둔 이유

낮은 단가

저는 오랫동안 해외업체들과 거래하면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번역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단가를 받았지만,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국내 번역가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특히 조선족이 유입되면서 한국어 번역비는 황당한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한국어 번역 단가는 동남아시아 언어들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입니다.

한국 특유의 제살 깎아먹기와 조선족 번역가들의 유입은 저가 경쟁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실제로 저는 해외업체와 거래하면서 조선족 번역가들 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번역한 것을 조선족 번역가가 검토하여 혹평을 하였습니다. 제가 강하게 반발하자 다른 번역가에게 검토를 맡겼는데, 그 번역가도 조선족 번역가였습니다. 두 번째 번역가는 저와 첫 번째 번역가 번역을 모두 깎아 내렸습니다.😢😢

기술의 발전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번역가가 사라질 직업 1순위'라고 합니다. 이 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챗GPT가 나오면서 AI 기술 발전을 실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AI를 도입하여 실시간 번역이나 통역을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몇 년 후면 중요하지 않은 통역은 인공지능이 담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저는 기계가 번역하고 인간이 검토하는 포스트 에디팅(Post-Editing)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3~4년 전부터 해외 대형 로컬라이제이션 업체들은 기계번역을 도입하는 것을 시도했습니다. 지금은 대형 번역건의 경우 기계가 번역하고 인간 번역가가 검토하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어떤 분은 PEMT(포스트 에디팅 머신 번역)가 번역 단가를 낮춤으로써 대형 기업들이 이전에는 비용 때문에 번역하지 않았던 콘텐츠도 번역을 의뢰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중요하지 않은 콘텐츠는 그냥 기계번역(자동번역)을 사용하여 번역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번역의 발전은 결국 일부 중요하거나 어려운 분야의 번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번역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됩니다.

포스트 에디팅의 문제는 번역단가가 황당한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단어당 7~10센트를 받았지만, 포스트 에디팅의 경우 대부분 업체에서 1.5센트 내외를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영한번역 단가로 영어 단어당 7~10센트이면 국내 번역업체에서 받는 단가보다 높은 편이지만, 대신 품질 관리를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몇몇 단골 업체들과 지속적으로 거래했습니다.)

에디팅이면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실제로 작업을 해보면 에디팅이 더 어렵습니다. 번역이 잘 된 경우에는 에디팅이 쉽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잘못 번역된 경우 고치는 것이 새로 번역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기계번역 수준이 수정할 내용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힘만 들고 돈이 안 되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혹자는 단가가 낮은 대신 물량을 많이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물량이 지속적으로 많을 것 같지 않고, 물량이 많을 경우 인간은 검토하는 기계로 전략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작업의 어려움

경쟁이 격화되면서 번역 단가가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였지만 저는 기존 번역 단가를 고수해왔습니다.

대부분 번역업체들은 번역가를 잘 교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번역가를 교체하여 번역 품질이 이전 번역가보다 더 좋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부 대형업체들은 많은 번역가를 확보하고 번역을 던져서 먼저 수락하는 번역가에게 번역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 시스템에서는 번역단가가 낮은 번역가들에게 우선적으로 번역으로 배정하기도 합니다.

기존 번역단가를 고수하게 되면 일부 번역업체들은 거래가 끊기게 됩니다. 그리고 일부 업체는 쉬운 번역은 단가가 낮은 번역가들에게 의뢰하고 어려운 번역이나 납기가 촉박한 작업만 의뢰하기도 합니다.

건강 문제

저는 몇 년 전 노안이 오면서 진행 중인 작업을 반납해야 한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눈에 문제가 발생하니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되었지만, 이후부터 번역일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노안은 나이가 들면서 겪는 현상이니 어쩔 수 없고 적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체력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젊었을 적에는 밤샘 작업을 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밤을 새어 작업을 하게 되면 며칠 동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작은 실수로 비난 받는 직업?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번역 품질이나 오역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서적을 번역하거나 영상 번역을 하는 번역가들이 그런 비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리뷰어로 오랫동안 번역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명백한 오류가 아니면 문제 삼지 않고 표현상의 문제는 보다 좋은 표현으로 수정하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제가 평가를 받는 입장에 놓였을 때에는 오역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비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일일이 해명을 해야 하는데,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일부 번역가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번역가들은 제대로 된 번역가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끔 과도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진상 고객을 만나면 정말 번역에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번역하는 분들은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다 보니 예민한 상태가 될 수 있고 남의 잘못을 보면 용납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심지어 이 블로그에서 맞춤법이 틀렸다고 욕설에 가까운 댓글을 남기는 번역가도 있었습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서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다음의 한 번역 카페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분쟁이 발생하여 큰 문제가 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현재 제가 관리 중인 네이버 카페(워드프레스 관련 카페)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분쟁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 노하우(?)를 익혔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부분은 개개인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 것 같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 혹은 모든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커뮤니티에서 서로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면 좋겠지만, 꼭 이상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여담... 돈을 받으면 완벽하게 번역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네이버 블로그 댓글에 어떤 분이 "돈을 받고 번역하면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반문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완벽하게 번역하면 좋겠지만, 완벽한 번역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네요.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한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윈도우 운영 체제도 수많은 에러가 있고, 수시로 에러를 수정하는 업데이트가 공개됩니다. 다른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코딩된 소프트웨어는 있을 수 없고 버그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며

저는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기 때문에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 때 구글에서 진행한 번역 테스트에도 통과하는 등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번역했지만 번역으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 같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있어서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2007년 일이네요. 벌써 16년이 지났네요.😢😢 당시에는 번역 테스트에 응하면 대부분 합격하던 시기였습니다.

구글 번역 테스트 합격

시대가 급변하면서 번역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20년 전에 어떤 번역가 분이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기계가 번역을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번역가로 살아남으려면 번역 실력 향상과 더불어 홍보를 통해 번역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수주하는 노력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를 위해 블로그나 유튜브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2 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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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기 바랍니다/

    2024년 새해에 우울한 소식을접하게되어 유감입니다.

    새해에는 추구하는 일들이 잘 풀리고 항상 휘망찬 한해개 되길 기원합니다.

    happist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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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번역 일은 사실상 그만 두었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Happist님도 2024년 새해에는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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