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깐깐한 번역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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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가장 큰 거래 업체는 미국에 소재한 한 로컬라이제이션 업체입니다. 하지만 이 번역회사는 QA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서 최근 몇 개월 동안 제법 큰 작업을 위주로만 맡고 있습니다.

번역을 마치면 보통은 DTP 작업을 하여 PDF로 보내오면 전체적으로 체크해줍니다. 그런 다음 고객사 담당자가 한 번 검토하여 수정 사항을 보내옵니다. 최종적으로 업체 QA 담당자가 검토하여 의심스런 부분을 문의해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번역물을 다른 번역가에게 검토를 맡깁니다. ISO 표준에 따라 일정 비율의 번역물을 제3의 번역가에게 검토를 맡기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번역 후에도 여러 번에 걸쳐 수정 사항이나 질문에 대응을 해 주어야 합니다.

사실 번역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간혹 말도 안 되는 수정 요청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DTP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까지 지적을 해 주어야 하는 등 부당한 추가 작업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큰 작업건은 전체 비용을 감안하여 맡을 만 하지만 작은 작업건은 추가로 소요되는 시간이 제법 늘어나게 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 번역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자잘한 작업건은 지난 몇 달간 맡지 않았습니다.

이 업체의 특징은 항상 번역가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번역가를 뽑을 때 테스트를 거쳐서 제대로 된 번역가를 뽑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몇 달을 못 버티고 이 업체와 거래를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번역 테스트에 통과하면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작은 작업도 모두 수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노력에 비해 받는 대가가 의외로 적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또, 리뷰어나 고객의 지적을 받으면 기분도 상해지고요. (이 업체는 쓰리아웃제를 채택하여 3번 클레임이 걸리면 퇴출됩니다.ㅎㅎ)

간혹 최종 클라이언트가 이상한 지적을 해옵니다. 가령, 영어로 된 문서를 1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미국이나 유럽에 소재한 큰 업체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각 나라에 소재한 번역업체나 번역가에게 뿌리는 방식으로 일이 많이 진행됩니다.)

문서의 언어는 “English”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각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러면 “English”는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것을 가지고 왜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한국어”로 번역했냐고 트집을 잡는 고객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에 대해 일일이 반박했지만 요즘은 그냥 고객이 해달라는 대로 수정해줍니다. 고객은 왕이니까요. (번역에 대해 잘 모르는 고객 리뷰어를 만나면… 참고)

오늘 새벽에 다른 번역가가 번역한 문서에 문제가 있어 수정을 해야 하는데 번역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그런데 문서를 살펴보니 기본적인 문법이 엉망이네요. (보통 문법이 틀린 곳이 많으면 번역 품질 자체에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업체와 관계를 맺은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 동안 몇 번 다툼이 있었지만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깐깐해서 간혹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스트레스를 견디며 지금까지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요즘은 좋은 작업이 많이 줄어들고 난해가 문서 번역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구글번역 등 AI(인공지능)가 발전함에 따라 쉬운 문서의 번역은 AI가 담당하고 번역가는 AI가 번역한 것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결국 난해하거나 소설, 마케팅 자료 같이 AI가 제대로 번역할 수 없는 문서는 인간이 직접 번역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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