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을 위해서는 정석을 잊어버려라

Last Updated: 2020년 11월 14일 | | 댓글 남기기

생활 속에서 정석(定石)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는데요, 이 용어는 바둑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1. 바둑에서 공격과 수비에 최선이라고 하는, 일정한 방식으로 돌을 놓는 법.
  2. 사물 처리에 있어서 일정하게 정해진 방식.

바둑에 입문하면 정석부터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석을 잊어버려라"라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다음은 바둑신문에 기재된 "정석을 알고 난 다음엔 잊어버려라"라는 바둑 수필입니다.

정석을 알고 난 다음엔 잊어버려라

B.C. 227년. 날로 강성해지는 진나라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낀 연나라 태자 단은 진나라 왕 정(후에 진시황이란 칭호를 얻게 됨)을 암살하고자 자객 형가를 보냈다. 형가는 진시황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나라에서 연나라로 망명해 온 번오기 장군의 머리와 진나라에 바치겠다는 연나라의 기름진 땅 지도를 선물로 가져갔다.
“어허! 기특한 지고······. 어서 단 위로 올라와 내게 가까이 오라!”
진시황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를 죽이러 온 형가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진시황이 지도를 펼친 순간 그 안에 몰래 감춰둔 비수가 바닥에 뚝 떨어졌고 형가는 곧장 달려가 그 비수를 집어 들고 진시황의 가슴을 향해 푹 찔렀다. 그러나 지시황의 소매가 너무 길어 쭉 찢어지는 바람에 칼끝이 그의 몸에 닿지 않았다.
깜짝 놀란 진시황은 의자에서 일어나 커다란 기둥 사이사이로 도망쳤고, 형가는 그를 죽이고자 뒤쫓았다. 그러나 신하들과 호위무사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단 위로 뛰어올라가 진시황을 도와주지 않았다. 진나라의 국법에는 누구라도 왕이 있는 단상 위에 올라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조그만 칼을 든 형가에게 단상 위에서 이리저리 계속 쫓기자 어느 신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서 빨리 차고 있는 칼을 빼소서!”
그러나 진시황은 칼집이 너무 길어서 칼을 뽑을 수가 없었다.
“등에다 칼집을 짊어진 채로 칼을 뽑으면 되옵니다!”
누군가 또다시 이렇게 외쳤다.
진시황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재빨리 기다란 칼집을 자기 등 뒤에 대고는 칼을 위로 쑥 잡아 뺐다. 그러고는 비수를 집어 들고 달려드는 형가에게 긴 칼을 마구 휘둘러 치명상을 입혔다. 곧이어 달려든 신하들의 손에 의해 형가는 숨이 끊어졌다.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진시황은 그 분풀이로 단 아래에 있던 호위무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아무리 국법이 그렇더라도 암살자에게 쫓기는 왕을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했다는 것에 대해서 진시황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둑의 정석을 융통성 없이 무조건 곧이곧대로만 행하려는 것처럼 국법에 따라 단 위에 올라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진시황의 호위무사들은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정석을 알고 나서는 잊어버려라! 이것은 정석 자체를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정석을 알아두되 보다 융통성 있게 적용하라는 의미다.

글 : 바둑학 박사 이상훈 (원문)

"정석을 잊어버리라"라는 말은 정석 자체를 잊어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정석을 체득하여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둑에서 정석을 모르면 낭패를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너무 정석대로 바둑을 두면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최근 알파고의 등장으로 정석에 대한 관점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기보를 익히지 않고 오로지 바둑 규칙만을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여 기존 알파고를 넘어서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정석을 잊어버려라 2
알파고 제로 이미지. 출처=딥마인드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이루어놓은 것을 단시간에 넘어서는 인공지능(AI)을 보면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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