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정말 간단한 작업입니까?

Last Updated: 2017년 02월 15일 | | 2개 댓글

번역 에이전시에서 번역을 의뢰할 때 간혹 '간단한 번역입니다'하면서 보내줄 때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순진해서 정말 간단한 작업이라고 믿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번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간단한 번역' 혹은 '쉬운 번역'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드물지만 '간단한 문서이니 번역 좀 해주세요'라며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전 보통 해드리고 싶지만 지금 너무 바빠서 해드릴 수가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구글 번역기가 성능이 좋아져서 아마 이제는 그런 부탁이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번역 부탁을 해오더라도 이제는 '구글 번역기가 성능이 좋으니 구글 번역을 이용해보세요'라고 거절할 핑계거리가 생겼네요.

그런데 '간단한 문서입니다' 혹은 '간단한 번역입니다' 이런 표현을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에이전시 PM들도 사용합니다. 특히 "only ~ words"라는 표현으로 분량이 얼마 안 되니 맡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단순한 내용'이라고 언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봤을 때 단순한 문서라도 외국인이 봤을 때는 그리 단순한 문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쉬운 영어라 해도 번역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오래 전에 유아용 책 번역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단어가 정말 쉬워서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였습니다. 하지만 유아용 책을 참고로 나름대로 비슷한 표현을 동원하여 심혈(?)을 기울여 번역했지만,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서 겨우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쉬운 영어는 있어도 쉬운 번역은 없다'는 말을 실감했던 작업이었습니다.

간단한 작업

이런 일이 번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간단한 작업인 데 얼마에요?'라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간단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2 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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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번역이라는게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몇시간이든 하겠는데, 과정 자체가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막 여러 수십개를 찍어내듯이는 못 하겠더라고요. 말씀하신데로 정말 많은 에너지와 정신노동이 수반됩니다.

    예전에 매주마다 1시간짜리 동영상을 번역한적이 있는데 사람할짓이 아니었습니다.

    대충 프로세스가 이렇게 됩니다.
    1. 영어로 듣고 > 한글로 머리속에서 재구성 > 한글로 타이핑
    2. 가끔 모르는 단어 / 애매한 단어 찾아보기 + 영어식 관용어구를 영어로 검색
    3. 최종 검수 > 동영상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보면서 오탈자, 이상한 문장 찾기

    처음에 번역 시작했을때는 동영상하나에 2주정도 걸렸지만 지금은 12시간 정도 투자하면 1시간짜리 번역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매번 할때마다 느끼는건 정말 피곤한 작업이라는 것이죠.

    예전에 일론 머스크가 한 말중에 현대인의 정보 습득 속도는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정보 출력 속도는 아직도 50년전이나 다름 없다라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인 오픈AI에서는 뇌에서 바로 직렬 연결을 해서 입력과 출력을 하는 인터페이스를 구상하고 있더군요. (마치 대뇌용 PCI-E 라고나 할까요 ㅎㅎ)

    영어로된 방송을 볼때마다 알아듣고 직역 하라면 하겠는데 도무지 자판으로 치려니 너무 느리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적이 있어서 어서 실용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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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거나 해외에서 오래 공부하다가 온 사람들 중 일부는 할 일이 없을 때 '번역'이나 해볼까 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얼마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더군요. (사실 그런 마인드로는 어느 분야에 도전하더라도 실패하겠지만요.)

      번역 자체가 별로 비전이 없는 직종인데, 최근 구글 번역기의 발전 때문에 대표적인 사양산업(斜陽産業)이 된 듯한 느낌이 드네요.

      기계번역(구글번역 등)이 유럽의 언어들과 영어 간 번역 품질이 좋아도 번역가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듯이 번역가 직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시장 자체는 많이 축소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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