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기술 분야 번역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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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거창하지만 이 글에서는 앞으로 컴퓨터/IT 등의 기술 분야 번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 글에 동의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실제 당면하고 있는 도전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도전은 컴퓨터/IT 등을 중심으로 한 기술 분야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점차 일부 분야(의학, 법률, 문학, 마케팅, 예술 등)를 제외한 전(全) 분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들어가며

10년 전쯤인 것 같습니다. 당시 번역업계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 세계적인 로컬라이제이션 업체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 업체에 등록되었고 괜찮은 관계를 잠시 동안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이 업체가 다른 업체에 인수되면서 이 회사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습니다(큰 로컬라이제이션 업체라 할지라도 MS, Oracle 등과 같은 대형 기업들의 파트너로 선정되지 못하면 다른 업체에 인수되거나 업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이 다반사죠). 이후 거의 7~8년이 지나서 이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마 번역가 풀이 부족하여 제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겠지요... 의례적인 절차이지만 이 업체에서 Questionnaire 양식을 보내왔는데요, 항목 중 하나가 "기계 번역된 문서를 검토"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1~2년 전에도 비슷한 요청을 거래 업체로부터 받은 적이 었었는데 그때에는 단호하게 "NO"로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품질이 괜찮으면 검토해보겠다"로 답변을 보냈습니다. 아마 지금은 다소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몇 년 후에는 "Of course"로 답변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퍼닝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짧은 단면이 앞으로 기술 번역 분야가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인간 번역(Human Translation) vs 기계 번역(Machine Translation)

아마 IMF 전후라 생각됩니다. 당시 여러 기계 번역 툴이 시중에 나왔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도 매우 높았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계 번역 소프트웨어를 구입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기대를 안고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낮은 품질 때문이었죠. 그래서 많은 기계 번역 소프트웨어가 1~2만원대로 판매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번역업계에서는 이런 기계 번역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그 대안으로 "번역은 인간이 하되 기술의 힘을 빌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바로 CAT(Computer Aided Translation)입니다. 당시 SDL, Trados 등이 대표적인 CAT 툴이었고 현재는 SDL과 Trados가 합병하여 만들어진 SDL Trados를 위시하여 MemoQ, DejaVu, Across 등 다양한 CAT 툴이 나와 있습니다. CAT 툴의 핵심은 번역의 재사용(Reuse)입니다. 이외에도 용어(Glossary)라든지 여러 가지 기능을 부가하여 번역이 보다 빠르고 일관되게 진행되도록 지원합니다. 이러한 체계가 꽤 지속되어 왔고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Which direction?

기계 번역과 인간 번역의 접목?

하지만 지난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유형의 번역 요청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습니다. 바로 기계가 번역한 문서를 검토(검수)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지만 이제 이런 요청이 큰 번역 에이전시를 중심으로 간간히 들어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구글번역을 비롯한 기계번역의 발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구글번역이 현재까지는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지만, 일부 기술 분야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술번역이 더욱 발전하면 파급효과는 더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두 번째는 비용적인 측면일 것입니다. 고객사와 번역 에이전시는 꾸준히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CAT 툴도 결국은 번역 비용을 깎기 위한 한 방편인 측면도 있습니다.

단순히 이런 측면만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시대적인 흐름, 즉 추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분야든지 기술 발전은 기존의 틀을 바꾸는 파급력을 가지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2의 문학이라고 하는 번역분야까지 이런 영향을 받는 것은 씁쓸하네요. 이전까지는 번역의 주체는 엄연히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기계가 번역하고 사람이 검토(검수)하는 시스템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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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이런 위기의식은 실제로 20년 전에도, 아마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런 위기의식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래 전에 한 유능한 번역가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계가 번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민을 작년인가 한 커뮤니티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미 저보다 먼저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계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단순히 기우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 문학번역이나 특수 분야의 번역을 하시는 분은 이런 영향을 덜 받겠지만 컴퓨터/IT 분야를 비롯한 기술분야는 점점 더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이 분야의 기술번역가들은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요? 저와 같은 분야에서 번역하시는 분은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같습니다. 여러 가지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 실력을 더욱 연마하여 최고의 번역가가 된다. 다른 특수한 분야를 개척한다. 다른 직업을 준비한다... 아니면 그냥 기계번역된 문서를 검토하는 것에 만족한다.... 등등."

많은 분들이 나름대로의 대비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앞으로의 추세에 대비하지 않으면 몇 년 후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웹 디자인 분야도 여러 가지 CMS 툴의 확산으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전문가들이 있다고 하니 남의 이야기같지 않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에 동의하시지 않으실 분도 계시겠지만 컴퓨터와 IT 분야에서 이러한 요구가 점차 늘어날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글의 내용은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조금 우울한 전망인가요? 기술의 발전이 희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기존의 질서를 재편시키는 원동력으로도 작용하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 썩 유쾌한 경험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술번역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앞으로의 변화에 대비하여 미래를 선도하는 주역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겠습니다.

참고:



3 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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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글이 이세돌과 겨룬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쓰인 범용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인 딥러닝을 활용하여 영어-중국어 번역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8/0200000000AKR20160928160100017.HTML?input=1195m

    만약 이런 기능을 상용화한다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듯 합니다. 비단 번역가뿐만 아니라 다른 지적 직종까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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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과거 산업혁명과는 다르게 지적인 영역의 대체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일자리도 일자리 이지만, 한단계 나아가 인류의 생존권까지 큰 위협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비약적으로 부풀려 생각하는 것이였으면 좋겠네요 ㅠ

    기계가 인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때, 과연 과학소설에서 만들어 낸 로봇의 3원칙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의문입니다. 지구의 입장에서 사람들은, 많은 동물을 멸종시키고 지구의 자원을 불태워 버리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이니까 말이죠 ㅠ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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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도 점진적으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지적인 영역 포함)를 잠식해나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일부 분야에서는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신문 보니까 스포츠 기사를 작성하는 AI에 대해 나온 기사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기사는 작년에도 나왔는데 오늘 또 나왔네요. https://www.thewordcracker.com/scribblings/article-by-a-robot/ 기자들이 기사거리가 부족한가 봅니다.) 이처럼 일부 분야에서는 직접적인 영향에 놓여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범위는 더 확장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AI로 인해 사회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세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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