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를 힘들게 하는 고객

Last Updated: 2017년 06월 14일 댓글

번역을 하다 보면 다양한 고객을 만나게 됩니다. 좋은 고객도 있지만 번역가를 힘들게 하는 고객도 있습니다. 저는 최종 고객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에이전시를 통해 연락을 하는 편입니다. 보통은 번역을 완료해서 보내면 고객측에서 검토를 하여 피드백을 줍니다. 하지만 이상한 피드백을 주는 고객도 간혹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고 트집을 잡는 고객

가령 application이라는 단어는 "응용 프로그램"(이것은 MS Glossary에 나오는 표현),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하게 번역이 가능합니다. 번역 메모리(TM)에서 이전 표현을 찾아보고 가급적 동일하게 해주어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먼저는 TM을 찾아 보고 표현이 나오지 않으면 관행대로 번역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응용 프로그램"으로 하든, "애플리케이션"으로 하든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고객이 간혹 있습니다. 가령 자기 회사에서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데 왜 "애플리케이션"으로 번역했냐? 이런 식입니다. (점잖게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니 수정 부탁드립니다'라고 요청을 하면 될 것을 꼭 불만을 제기하는 이상한 클라이언트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내가 당신 회사 직원이냐?"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고객사에서 먼저 Glossary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 이런 것으로 트집을 잡는 경우 저는 항의를 합니다. (그러면 중간에 에이전시가 난처하게 되겠지만 고객이 클레임을 제기하더라도 고객 클레임이 부당하다는 것을 계속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특정 트레이드마크(상표)가 한국에서는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TM을 붙여서 번역했다고 '오역'이라고 지적하는 고객까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ABC™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그대로 ABC™로 번역하는 것이 관행이고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특정 상표가 한국에서 등록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그 많은 상표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오역'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고 질린 적이 있습니다. (오랜 번역 생활에서 이런 경우를 처음 접했습니다.)

지시사항에 반(反)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고객

제가 거래하는 한 업체에서는 영어로 남겨두어야 하는 단어나 어구를 별도의 색으로 표시해주거나 번역 툴에 코멘트를 남겨줍니다. 가령 "ABC"는 번역하지 마세요라고 지시할 수 있습니다. 이 업체 작업에서는 그 이외의 표현을 모두 번역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서 번역하면 나중에 엉뚱한 소리를 하는 고객이 있습니다.

또, 용어집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용어집의 용어를 엄격히 준수해서 번역해야 합니다. 하지만 용어집을 누가 번역했는지 몰라도 이상한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번역할 때 고민이 됩니다. 이 경우 저는 에이전시에 연락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봅니다. 보통 용어집대로 해라고 합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지시사항을 따를 수밖에요. 그렇게 번역하면 또 고객사에서 용어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 황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엉터리 용어집을 제공하고서는 용어집대로 했다고 트집을 잡는 불합리한 케이스죠.

번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고객

특정 분야의 번역의 경우 해당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행이 있습니다. 보통 관행에 따라 번역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간혹 번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문 매뉴얼을 여러 언어로 작업하는 건이 있을 경우 "English"는 보통 해당 언어로 번역됩니다. 즉, 한국어로 번역될 경우 "한국어", 일본어로 번역될 경우 "日本語" ... 이런 식이죠. 그래야 표지에 제대로 된 언어 이름이 표시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English"를 "한국어"로 번역했다고 "심각한 오역"이라면서 문제를 제기해 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TM(번역 메모리)에도 "한국어"로 되어 있고, 전혀 번역에 이상이 없지만, 번역을 검토한 한국인 직원이 번역에 대해 몰라서 그런지 "English"가 "영어"지 왜 "한국어"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황당한 고객으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오역이라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고객도 있습니다. 어떤 문장을 10명의 번역가에게 번역을 시키면 10가지 번역이 가능한 것이 번역입니다. 이런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잘못된 번역이라고 지적질하는 고객을 만나게 되면 번역에 대한 회의까지 들게 됩니다.

단가를 후려치는 고객

예전에 번역업체에 있을 때 우리나라 공기업들이 특히 단가를 황당하게 제시하는 경우를 간혹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외 에이전시들과 단가를 정해놓고 일을 하기 때문에 단가에 대한 불만은 그리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간혹 고객이 단가 인하를 요구하면 제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보통 합의된 단가를 낮추어달라고 요청하면 거부하는 편입니다. (그러다가 거래가 단절된 업체가 몇 군데 있습니다.)

해외에 거래하면 국내보다는 훨씬 높게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로는 우선 제대로 된 업체에서는 엄격한 품질관리(QA) 절차에 따라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일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한 업체는 번역을 완료하면 검토본을 보내주고, 또 레이아웃 작업을 한 후에 레이아웃까지 검토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고 시간도 더 많이 소요됩니다. 두 번째 이유로 비용을 받을 때의 수수료 문제입니다. 외화를 받을 때에는 보내는 은행에서 수수료를 제하고, 중간 은행에서 수수료를 떼고, 그리고 수신 은행에서도 수수료를 뗍니다. 페이팔로 받으면 마찬가지로 상당한 수수료가 차감되어 들어오고 적용되는 환율이 매우 불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용을 지불받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가끔 빨리 주는 업체도 있지만 드문 편입니다.) 주위에 목수일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 데 그분은 일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혹은 1주일 이내에 비용을 지급받더군요. 번역은 작업이 끝난 후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개월 혹은 그 이상 걸릴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면 해외 업체와 일하는 것이 반드시 유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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