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대기업들이 사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예방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성희롱 방지 정책을 도입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디까지가 성희롱인지 불분명할 때가 많습니다. 성희롱의 복잡 다양한 측면 때문에 합의된 성관계인지, 아니면 범죄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과 김흥국씨 사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고 건전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간다면 이런 일이 없겠지만 사회가 그리 단순하지 않는 것이 문제 같습니다. (저는 술을 끊은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저처럼 술을 끊으면 가수 김흥국씨가 겪은 것과 같은 사건에 휘말릴 일이 없습니다.ㅎㅎ)
지난 주에 성희롱 관련 번역을 맡았습니다. 성희롱 방지 정책 설명과 성희롱 예방 교육에 관한 문서였는데요. 윤리강령 문서의 경우 사회 이슈를 반영하여 기존 정책을 업데이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희롱 예방 교육도 최근의 사회 현상을 일부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성희롱 예방 교육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면서 단계별로 특정 상황에서 성희롱 혹은 성차별인지를 묻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었는데요. 승진을 대가로 성상납을 하면서 발생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시나리오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간단한 시나리오를 하나 소개하자면... (내용을 조금 각색함)
1. 한 남자 사무직 직원이 간혹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 등 외모가 보통의 남자 직원과는 사뭇 다릅니다.
2. 여자 상사는 이 남직원의 성 정체성을 의심합니다. 그 직원에게 게이인지, 성적 파트너가 있는지 등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직원이 '아니오'라고 답변했지만, 상사는 그 직원이 '게이' 같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소문을 냅니다.
3. 그러던 중 프런트 데스크에서 대고객 업무를 담당하는 과장 자리가 공석이 됩니다. 이 남직원은 공석이 된 자리에 지원하지만 상사로부터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이므로 복장을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4. 직원은 상사의 언행과 차별을 상부에 신고합니다. 이로 인해 상사는 경고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상사는 이 남직원 대신 다른 여직원을 공석이 된 과장 직책에 추천합니다. 하지만 추천된 여직원은 이 남직원보다 경험이 훨씬 부족합니다.
회사에서 복장을 규제하는 정책이 없으므로 여성스러운 복장을 한다고 해서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하네요. (회사에 복장을 규제하는 정책이 있다면 다른 판단이 가능할 것도 같지만, 그런 경우 해당 정책이 성 정체성이나 성적 취향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에 위배된다고 딴지를 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직원의 상사라면 행동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4번에서 다른 여직원을 추천한 것은 상황상 '보복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성희롱이나 성차별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말이 고루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남녀가 단둘이 있게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할 수 있는 한 방법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문제에 대해 아직 다루어 본 적이 거의 없는 듯 해요..
신중하게 접근을 해야 할 듯..!!
윤리강령 문서를 번역하다 보면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괴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선진국이라고 해서 불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그래도 경제 규모를 감안했을 때 아직은 우리나라의 시민 수준이나 인식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희롱/성범죄와 성정체성 문제는 앞으로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몇년 전 출입국신고서에 sex를 기입하는 난이 gender로 바뀌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복잡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보다 점잖은 표현이겠거니 했었죠. ㅎ..
최근 윤리강령 자료를 번역하면서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