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원의 우승 상금을 두고 한·중·일 3국 대표 기사들이 경쟁하는 제2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본선 3국에서, 중국의 첫 번째 대표 선수인 커제 9단이 한국의 김명훈 9단과의 대결에서 초유의 시간패를 당하는 해프닝이 발생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농심신라면배 세계기전에서 중국 커제, 초유의 시간패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불리는 농심신라면배는 한중일 3국이 국가를 대표해 맞붙는 대항전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국가가 우승하는 독특한 형식의 세계 바둑 대회입니다.
지난 제25회 대회에서는 중국의 첫 번째 선수인 셰얼하오 9단이 7연승을 기록하며 중국이 매우 유리한 상황에 있었지만, 세계 1위 신진서 9단이 셰얼하오를 시작으로 일본의 최강자 이야마 유타를 제압한 뒤, 그 기세를 몰아 자오천위, 커제, 딩하오, 구쯔하오까지 차례로 물리치며 우리나라가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번 제2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의 한중일 3국 대표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
- 설현준
- 김명훈
- 신민준
- 박정환
- 신진서
중국:
- 커제
- 판팅위
- 셰얼하오
- 딩하오
- 리쉬안하오
일본:
- 히로세 유이지
- 쉬자위안
- 시바노 도라마루
- 이야마 유타
- 이치리키 료
이번 대회의 1차전은 중국의 커제와 우리나라의 설현준 기사가 대결을 벌여 커제가 반집승을 거두었습니다. 설현준이 유리했지만 끝내기에서 손해를 보면서 노련한 커제 9단에게 아쉽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2차전에서는 중국의 커제와 일본의 히로세 유이치 선수가 맞붙어 커제가 압도적인 기량으로 승리했습니다.
3차전은 중국의 커제와 우리나라의 김명훈 기사가 대결을 벌였는데요. 커제는 현재 중국 6위에 랭크되어 있고, 김명훈도 우리나라 6위라고 하네요.
하지만 중국은 세계 일류급 선수들이 상위에 포진하여 실력이 엇비슷한 상황으로 수준이 높은 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위 몇 명의 선수만 기량이 출중하고 허리가 약합니다. 신진서 9단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한국 1위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박정환과 변상일 기사가 세계 일류급으로 경쟁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변상일 선수는 이번 농심배 세계기전에 합류하지 못했네요.)
커제와 김명훈 선수의 상대 전적은 커제가 3:0으로 압도적인 상황이었고, 이번 3차전에서도 사실상 커제가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커제 9단이 초시계를 늦게 누르면서 시간패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커제 선수가 시간패를 인지한 후에 자기 뺨을 때리면서 자책했지만 시간패 판정이 확정되면서 김명훈 기사가 어부지리(漁夫之利)로 행운의 승리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2024년 9월 8일 본선 4국 - 김명훈 vs. 이야마 유타
본선 4국은 1승을 거둔 기명훈 9단과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대결을 하여 김명훈 선수가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상대방이 착각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김명훈 기사는 매우 유리한 바둑을 느슨하게 두다 역전을 당해 사실상 승리가 물 건너 간 듯 보였지만 행운의 여신은 또 한 번 김명훈 9단을 선택했습니다.
농심배 우승 상금은 얼마?
농심배는 승자 독식 방식으로 한중일 3국 대표 선수 5명이 나와 서로 대결을 벌이는 방식입니다. 이기는 선수가 살아남아 그 다음 국가의 선수와 대결을 벌여 끝까지 살아 남는 팀이 우승합니다.
우승 상금은 5억원이며, 우상 상금을 나누는 방식은 각 국의 재량에 따릅니다. 우리나라는 5억원 중 70%를 5명의 선수가 나누어 갖게 되고, 20%는 승리 수당으로 승수에 따라 나누게 된다고 합니다.
이외에 대국료가 각 대국당 300만원, 3연승 이상을 하게 되는 경우 각 승리 시 1,000만원씩 지급이 됩니다. 커제는 어제 대국에서 김명훈 9단을 상대로 이겼다면 3승을 하면서 대국료 외에 1,000만원의 승리 수당을 챙길 수 있었고, 이후에 1승을 할 때마다 각 승리에 대하여 1,000만원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가질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초시계를 늦게 누르는 바람에 이러한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어제 대국에서 커제 9단이 이겼다면 우리나라는 지난 25회 대국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5회 대회에서는 중국의 셰얼하오 9단이 무려 7연승을 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7연승을 한 셰얼하오 선수는 8번의 대국과 3연승 이후의 연승에 대한 수당으로 8*300만원 + 5*1,000만원 = 5,400만원을 챙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상금의 50%를 중국기원이 가져 간다고 하네요.😥)
커제가 불운으로 패배함에 따라 이번 농심신라면배 기전은 한 선수가 독주하기 보다 다양한 선수들이 맞붙어 재미있는 대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본은 한 때 세계 바둑계를 호령했고 초창기 우리나라 기사들이 바둑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유학을 가기도 했지만 조훈현(조훈현 기사는 일본 유학파임), 유창혁, 이창호, 이세돌 등 걸출한 기사들이 세계를 호령하면서 세계 1위의 대부분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차지해오고 있습니다.
초창기에 강세를 보였던 일본은 한동안 세계 바둑계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후지쯔배 등 세계 대회들이 사라지면서 경쟁력이 크게 하락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에서 최근 일본의 이치리키 료 9단이 결승 5번기에서 2승을 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의 셰커 선수를 한 번만 더 이기면 우승을 하는 유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소수 정예의 느낌으로 그동안 세계 바둑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많은 일류급 기사들을 보유한 중국에게 밀리는 양상 같습니다.
제2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대국 일정
농심배는 3라운드에 걸쳐 펼쳐집니다.
- 1라운드: 9월 5일부터 9월 8일까지 중국 연길 이도백하 농심 백산수 공장에서 나흘간 개최.
- 2라운드: 2024년 11월 30일부터 12월 4일까지 5일 동안 다섯 국의 대국이 열림.
- 3라운드: 2025년 2월에 개최될 예정
농심배는 최후까지 살아 남는 국가가 우승하는 방식이며 제 1국에서 한 국가의 첫 번째 기사가 다른 나라의 모든 기사를 모두 물리친다면 10국만에 대국이 끝날 수 있고, 모든 기사들이 다 대국을 펼쳐 최후의 1인이 남는 치열한 대국이 이루어진다면 14국까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지난 25회 대회에서 모든 기사들이 대국을 펼쳐 14국까지 펼쳐졌습니다.)
바둑 세계 랭킹
공식적인 세계 랭킹이 없지만 Go Ratings이라는 사이트에서 비공식적으로 세계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6일 기준으로 세계 1위는 신진서 선수이고 그 뒤를 이어 중국의 리쉬엔하오 기사가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왕싱하오라는 중국 기사가 3위를, 커제, 양딩신, 방정환, 딩하오 등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치리키 료 기사가 8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위 순위 대부분을 중국 기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특출한 일부 기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바둑과 AI
바둑에서 AI(인공지능)는 신이 된지 오래 입니다. 예전에는 기사들이 모여서 연구했지만 이제는 프로 기사들도 인공지능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각 바둑 기사의 스타일(기풍)이 뚜렷했지만, 이제는 모두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하다 보니 기풍이 비슷해졌고, 실력 또한 상향 평준화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 바둑 수준은 향상되었지만 누가 인공지능에 비슷하게 바둑을 두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바둑을 보는 재미가 반감된 것 같습니다. 또한, 유튜버들이 인공지능을 가지고 세계 일류 기사들의 바둑을 평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초읽기가 거의 끝나기 직전에 착점하고 초시계를 아슬하게 누르다 이런 참사가 발생한 것 같네요.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초읽기가 끝나는 시점에 돌을 던져 착점하다 잘못 놓여진 것을 건드리다 반칙패를 당하는 것을 본 적 기억이 나네요.ㅎㅎ
조금 빨리 착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고 초읽기가 끝나기 직전에 두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면 이런 반칙패를 당할 위험이 언제든지 있는 것 같습니다.
잘못하여 시간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김명훈 9단은 7초쯤에 착수를 하네요. 9초가 되어 착수하는 기사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정말 아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