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든 사나이

[번역] 클레임에 대처하는 자세

번역을 하다 보니 1~2년마다 1번 정도는 클레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예상치 못한 수입이 생겨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은 지난 달에 한 번역에 대하여 황당한 수정 요청을 받아 기분이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수정 사항을 자세히 보니 조금 황당합니다. 거의 모든 문장에 대해 코멘트를 단 것 같은데, 대부분은 무의미한 수정에 불과하고 많은 경우 잘못 수정되었네요.

가령 cross-functional을 나는 “다기능”이라고 번역했는데 검토자는 “상호 보완적인”이라고 수정할 것을 지적했네요. “cross-functional”을 보통 “교차 기능” 혹은 “다기능” 정도로 번역이 되는 데 “상호 보완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evidence-based discussions을 “근거 중심 토론”이라고 번역했지만 검토자는 “공신력 있는 토론”이라고 했네요. 다시 구글을 검색해보아도 “근거 중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혜택을 얻는”을 “혜택을 받는”이라고 지적하고 “오역”이라고 표시했네요.

정말 이런 검토자를 보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좋을 것은 없겠지요. 수정 사항을 모두 검토하여 수락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고 수정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 경우 부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정이 왜 황당한지를 몇 가지 지적하고 만약 수정해주기를 원한다면 추가 비용을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해놓았습니다. 이런 경우 고객사에서 수정해달라고 하면 수정해주는 것이 제일 마음이 편합니다. 왜냐하면 고객이 왕이니까요. 그리고 번역은 결국 고객이 사용하는 것이니까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알아서 하겠죠.

번역에서 검토할 때 명백한 오역은 Mistranslation(오역) 혹은 Incorrect Translation이라고 표시하지만 그렇지 않고 의미상 큰 차이가 없거나 단순한 표현 변경은 Stylistic Change(스타일 변경) 혹은 Choice of Preference(개인 기호)로 표시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외에 문법적인 사항, 고객 지침 위반 등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검토 건은 모든 피드백에 대해 오역으로 표시했네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모두 오역으로 보이나 봅니다. 오역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봤을 때에는 거의 모든 수정 사항이 별 차이가 없고(No difference), 수정된 내용이 원문과 맞지 않게 된 것도 많은 데 말입니다.

바나나를 든 사나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를 잘 넘기는 기회가 찾아보는 법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번역 완료 후에 비용까지 다 받은 건에 대해 뒤늦게 클레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강하게 반발했고 고객사는 다른 번역가에게 맡겨서 문제가 되는지 여부를 검토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는 클레임 건에 대해 번역료를 삭감하는 아주 안 좋은 정책이 있었습니다. 그냥 번역료를 삭감하지 말고 넘어가자고 했지만 자기네 정책이라면서 결국은 번역료 일부를 삭감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 사건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외국인들은 인정사정이 없구나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인정에 이끌리지 않고 가급적 무미건조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인 점은 그 사건 이후 (당시로서는 금전적인 손해를 많이 보았지만 이후에) 그 업체로부터 더 많은 일을 받게 되었고 지금은 가장 큰 클라이언트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음악이나 들으면서 하던 일이나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떠나시기 전에 아무 댓글(Comments)이라도 남겨두세요.
기부를 통해 이 블로그의 운영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