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아더 앤더슨이 망한 이유

윤리(Ethics)와 양심(Conscience)을 저버린 엔론을 비판하는 카툰 (Cartoon: Birmingham News)
윤리(Ethics)와 양심(Conscience)을 저버린 엔론을 비판하는 카툰 (Cartoon: Birmingham News)

아더 앤더슨은 미국의 전설적인 회계사였던 아더 앤더슨(Arthur Andersen)이 1913년 동업자들과 함께 설립한 회계법인을 모태로 하며, 세계 회계시장에서 PWC, 딜로이트, 언스트 앤 영, KPMG와 함께 '빅(Big) 5'를 형성했던 회사였지만 엔론 사태* 당시 분식회계에 연류되어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 이 글은 2016년 9월 26일에 작성되었습니다. ]

아더 앤더슨이 망한 EU

이 회사가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한 통의 이메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엔론 사태 당시 정부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더 앤더슨 직원들은 관련 문서를 파기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사법 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로 기소되었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었습니다.

앤더슨 사의 운명을 결정한 배심원들은 이 회사의 변호사인 Nancy Temple이 작성한 단 한 건의 이메일 때문에 유죄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Nancy Temple은 해당 이메일에서 동료에게 당국의 조사로부터 "회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메모 하나를 변조(위조)하도록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아더 앤더슨 사건은 결국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졌지만 그땐 이미 회사가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이외에도 부적절한 이메일로 인해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거나 소송에서 불이익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1995년경에는 석유회사인 Chevron은 회사의 이메일 시스템에 유포된 부적절한 메시지(성희롱 관련) 때문에 사건 해결을 위해 220만 달러의 거액을 지불하였습니다. 소송에서 제출된 메시지 하나가 "맥주가 여자보다 더 좋은 25가지 이유(25 reasons why beer is better than a woman)"라는 목록이었다고 합니다.

Chevron은 성희롱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220만 달러에 합의했다. (Los Angeles Times 기사)
Chevron은 성희롱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220만 달러에 합의했다. (Los Angeles Times 기사)

저는 2000년대 초 몇 년 동안 많은 분량의 Code of Conduct(윤리강령, 윤리규범) 자료를 지속적으로 번역했습니다. 이메일이 소송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윤리강령 자료에 '이메일'에 대한 부분이 강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피싱', '랜섬웨어', '소셜 엔지니어링(사회 공학적 기법)' 등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 자료를 번역했습니다. 이처럼 제대로 된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윤리 규정을 업데이트하여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강화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TV 광고에서도 윤리 경영을 외치기도 했고요. 하지만 말로만 윤리 경영을 외친다고 윤리 경영이 되나요?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구글과 주고받은 부적절한 내용의 이메일인 것으로 봐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졌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삼성의 내부 이메일과 구글의 “너무 비슷하니 좀 고쳐라”는 취지의 경고, 이른바 ‘벤치마킹’이라는 명목으로 아이폰의 모든 기능을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지적한 내부 문서 등은 배심원들에게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베꼈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Source: http://slownews.kr/5335)

또한, 엔론 사태에서 주는 교훈은 "은폐 행위는 별도로 처벌되며 조사 대상 문제보다 더 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행태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부 당국도 불법적인 기업 행위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삼성에서 공정위 조사를 방해했지만 뉴스에 나온 소식으로는 벌금형을 받은 것이 고작인 것 같습니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를 앞둔 삼성 계열사들은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문제가 될 만한 자료에 대한 폐기·조작을 하는 동시에 공정위 조사관들의 자료 접근 차단을 위해 만전을 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4년 11월 ‘삼성전자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관련 조사 당시 공정위 조사관이 직원 컴퓨터를 검색하던 중 사내 전산 통신망 가동이 갑작스레 중단된 일이 있었다. 이 통신망은 중앙통제가 가능한 터라 조사관이 컴퓨터 속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을 원천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도급 업체 관련 서류에 문제될 만한 사항을 삼성 직원이 수정액으로 지운 뒤 이를 복사해 공정위 조사관에 제시한 것이 나중에 발각된 일도 있었다. 이 일로 삼성전자와 관련 직원에게 각각 2000만 원씩 과태료가 부과됐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입수한 중요 서류를 탈취해 파기한 일도 있었다... ("삼성의 기막힌 공정위 조사방해")

공정위 조사관들이 입수한 중요 서류를 탈취해 파기해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수사관들이 영장을 들고 와도 건물 입구에서 경비들이 보안을 이유로 수사관이나 조사관들을 막고, 그 사이에 중요한 자료를 폐기하거나 빼돌리는 황당한 행위를 해도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최근 롯데 사태에서도 롯데 직원들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고요. 만약 이런 증거 인멸 행위를 강하게 처벌하고, 심지어 그런 행위를 하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정부에서 주었다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런 안 좋은 관행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하다가 임원이 기소를 당하거나 거액의 벌금을 무는 추태도 종종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이닉스사 간부 4명에 이어 삼성전자 임원 3명도 DRAM 가격담합 행위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미국에서 징역형을 받기로 했다고 미 법무부가 22일(현지시간) 밝혔다. ("삼성전자 임원 3명 미국서 징역형")

사태가 이러다 보니 외국 기업들도 우리나라 법과 당국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령 최근 옥시 사태에서 영국 기업에 보여준 행동은 우리나라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과 윤리 교육을 통한 기업들의 자정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인 것 같습니다.

* 엔론사태(Enron scandal): 엔론(Enron)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2000년 총수입이 1,010억 달러에 달했지만 2001년 10월 16일 엔론은 2001년 2분기 실적 보고를 통해 적자액이 6억 1,800만 달러라고 발표했고 약 두 달 뒤인 12월 2일 정식으로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수 백 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기업이 파산하면서 오랫동안 회계부정(분식회계)이 있어왔다는 사실도 폭로되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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