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후기의 유적지인 마추픽추. 사진: SBS

목숨과 바꾼 셀카 — 황당한 죽음

잉카 후기의 유적지인 마추픽추. 사진: SBS

잉카 후기의 유적지인 마추픽추. 사진: SBS

이런 허망한 죽임이 또 있을까요? 페루 중남부 안데스 산맥에 있는 잉카 후기의 유적지인 마추픽추에서 독일 관광객이 셀카를 찍다가 추락사했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7월 1일 올리버 파커(51)라는 독일인이 출입제한 구역에 들어가서 셀카를 찍으려다가 300피트(약 91m) 절벽 밑으로 떨어져 숨졌다고 합니다.

목격자들은 파커 씨가 절벽 위에서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으려고 뛰어올랐다가 중심을 잃는 바람에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전했습니다(기사 원문).

이 기사를 접하면서 사람이란 이렇게 황당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 ‘만물박사’로 통하는 영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무슨 질문을 해도 즉각 답변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그 답변이 다소 특이해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한 친구가 질문을 하니까, 그 선생님의 즉각적인 답변은 “죽으면 모든 게 끝이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질문했던 학생이 “그러면 (우리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으니 그 선생님 曰, “그러면 개나 돼지나 개미는 더 허무하지 않냐?” “…”

어렸을 때 영혼에 대해 간혹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릴 적에 어른들로부터 우리가 선행을 쌓고 죽으면 부자집에 다시 태어나고 악하게 살다 죽으면 개나 돼지 혹은 개미 등의 미물로 환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만일 지나가다가 발로 무심코 밟은 개미가 우리 조상 중 하나라면? 그리고 그런 미물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영혼이 있는 것이 될까?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습니다.

일본의 한 학생이 사후세계가 궁금하여 선생님에게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질문하니 선생이 “죽어봐야 할지”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정말로 사후세계가 궁금해서 결국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Question

그리고 어떤 사람은 너무나 착하게 살고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해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악하게 살면서도 부와 장수를 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부조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4)

그리고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죄의 삯(대가)은 사망“이라고도 알려주셨습니다.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 감옥에서 아무리 착하게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그 죄가 사라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내가 죄인이냐?’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 죄가 이 땅에서의 죄가 아니라 이 땅에 오기 전,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은 죄라고 한다면요? (우리가 의인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왜 한국, 미국 혹은 다른 곳에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또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2-14)

우리의 인생이 70-80 혹은 100세까지 산다고 해도 결국에는 모두 버려두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헛되다’라는 단어는 영문 NIV에서는 “Meaningless” 즉 “의미가 없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Our-life

사람은 죽기 전에 자신이 살아온 이때까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고 합니다. (실제로 몇 번 그런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헛되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때까지 성공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 하니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헛된 것일까요? 하지만 솔로몬은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지만 의미가 있는 것이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spirit: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느니라 (전도서 12:7-14)

결국 우리가 원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사람에게는 3번의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는 ‘앞머리는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이고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란 지나간 후에야 그것이 기회였구나하고 후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Source: http://www.miti3000.it/mito/musei/atene/atene5.htm

Source: http://www.miti3000.it/mito/musei/atene/atene5.htm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종종 ‘나이가 들고 믿고 싶을 때 하나님을 믿겠다’ 혹은 ‘돈도 좀 벌고 안정되면 그 때에 하나님을 믿겠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란 항상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6-7)

너무 늦기 전에 ‘생각’을 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분명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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